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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09-09-10 17
이 가을, 오랜 세월 농익은 예술 속으로
한윤정기자 yjhan@kyunghyang.com
이강소 회고전·이병용 유작전
젊은 작가, 신작 중심, 기획 위주의 전시에서 벗어나 오랜 세월에 걸쳐 무르익은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 이강소 화백(66)의 회고전, 그리고 고 이병용 화백(1948~2001)의 유고전이다. 두 작가 모두 동양과 서양, 정신과 물질, 구상과 추상의 접목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을 정립하고자 했다.
이강소 화백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8~27일)와 헤이리의 공간 퍼플(4일~12월31일)에서 1989년부터 올해까지 20년간의 주요 작품을 총망라한 전시를 열고 있다. 그는 70년대부터 회화·조각·사진·설치·퍼포먼스·영상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면서 다양한 실험을 해왔는데 갤러리현대에는 회화·조각·세라믹 작품을, 공간 퍼플에서는 최근작인 ‘분황사’ 설치를 선보인다.
이 화백은 동양의 절제미와 서양의 추상성이 조화된 작품을 추구해왔다. 70년대 모노크롬 미술의 영향을 받은 회화의 경우 흰색·회색·청색 등 제한된 색상을 사용하면서 한국 문인화의 필치와 서양 추상표현주의의 제스처를 결합해 다양한 표현과 무한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의 상징이 된 오리 그림이나 배, 사슴 그림은 단순한 획으로 표현된 이미지들이 개별적인 사물인 동시에 배경의 물결이나 지평선과 하나로 결합되기도 한다. 이렇듯 고정된 정의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미지를 통해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세계, 이미지와 실재 사이의 화해를 만들어낸다.
이 화백은 75년 명동에서의 첫 개인전 당시 주막을 화랑으로 옮겨 관람객들이 막걸리를 마실 수 있도록 함으로써 관람객과 작품의 소통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으며, 같은 해 파리비엔날레에서는 바닥에 밀가루를 깔고 살아있는 닭을 풀어놓아 움직이는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평면작업에 집중해왔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병용 유작전(11일~10월25일)은 현대미술의 흐름에 적극 가담했으나 70년대 말 미국으로 이민간 뒤 한국미술계에서 잊혀진 고 이병용의 작품세계를 돌아보는 전시다. 그가 뉴욕에 도착한 뒤 자신의 조형세계를 돌아보고 초심으로 돌아가 드로잉으로 제작한 ‘의자’ ‘옷걸이’ ‘배’ 연작을 시작으로 ‘고추’ ‘알’ ‘삶’ ‘흙과 더불어’ 등의 시리즈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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