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저자 : 에밀 아자르
출판사 : 문학동네
|
이 소설은 처절하고 고독한 삶의 조건 속에서도 깊고 무한하며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을 피워 올리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제는 늙어서 몸도 팔 수 없는 전직 창녀 출신의 로자 아줌마와 그녀가 맡아 키우고 있는 열네살 소년 모모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현실은 냉정하고, 그 곳은 버림받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인종적으로 차별받는 사람들,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온 유태인, 살아가기 위해 웃음을 팔아야 하는 창녀들, 창녀들의 아이를 돌보는 여자, 친구도 가족도 없는 노인, 성 전환자, 병든 사람들, 살인자...' 그러나 그들은 인간을 증오하거나 삶을 원망하지 않는다. 과연 이러한 인생도 살 만한 것인가를 묻고 싶겠지만, 모모는 이들 속에서 슬픔과 절망을 딛고 살아가는 지혜와 삶을 껴안고 상처를 보듬는 법을 배운다. 특히 너무 뚱뚱하여 자신의 손으로 똥도 닦을 수 없는 로자의 엉덩이를 모모가 닦아주는 장면이나, 로자가 죽고 난 뒤 모모가 로자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는 모습은 엄숙한 감동을 준다. 궁금한 것이 있을때 마다 하밀 할아버지에게 달려가곤 했던 모모처럼 우리도 이 소설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가장 남루한 곳에 처한 생도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인가? 나는 내 앞의 생을 얼마만큼 사랑하고 있는가? 도대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사랑없이 살 수 없다'는 이 단순한 한 마디 말을 얼마나 깊이 느끼고 있는지, 모모의 손아귀에 쥐어진 한 개의 달걀처럼 우리의 생은 죽음과 생명을 동시에 품은 신비로운 그 무엇이다. 광대무변한 우주에서 찰나적이고 아슬아슬한 생을 사는 우리, 그러나 사랑은 그 우주 속에 끝없이 퍼져가는 빛처럼 우리 인생에 의미를 부여한다. 삶에 대한 무한하고도 깊은 애정’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아픈' 소설이다. 누가 삶을 두고 '등허리에 무거운 짐을 얹고 산을 향해 조심조심 오르는 것'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모모의 등에 지워진 삶의 무게는 산을 오르기는커녕 어린 그에겐 가만히 서 있기도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가슴 아픈 것은 어린 모모의 인생을 짓누르는 그 삶의 무게가 아니다. 차라리 힘들다고 주저앉아 운다면, 발버둥치며 제발 이런 인생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떼를 쓴다면 그의 삶을 읽는 우리가 이렇게 힘들지는 않을는지도 모른다. 작품을 읽는 내내 힘이 든다. 힘이 들어 몇 번씩 책장을 덮어야 하고, 같은 이유로 또다시 책을 집어 들어야 한다. 하지만 어린 모모는 그 무거움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인생의 슬픔을 내색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시니컬한 냉소로 그 무게를 떨쳐내려 한다. 그의 그런 냉소가 무수한 눈물들이 쌓인 알갱이들이란 사실을 잘 알기에 답답함이 밀려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