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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뒷골목 풍경 김기훈
2006/06/26 35677

06년 06월 < 미래전략 기획 > 조선의 뒷골목 풍경
저자 :
출판사 :
조선의 뒷골목 풍경

김기훈 대리


‘나의 오늘을 기록하는 사람이 없는데, 내 얘기는 어떻게 나중에 사람들이 알게 되지? 교과서에 나온 옛날얘기들은 대체 누가 기록한거지? 지금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왜 책에 나온 사람은 이렇게 조금이지?’
와 같은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두의 이야기가 기록되지는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건 한참 후의 일이다. 세상에 존재한다는 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는 것처럼 허무한건 없다. 어쩌면 역사에 이름 석자를 남기고 싶어 하는 건 무언의 욕망이고 목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정태세문단세- 하며 조선조 왕의 이름을 줄줄 외고, 반란이며 전쟁을 년도까지 기억하면서 정작 대다수를 차지하는 조선의 백성들은 이름은 커녕 그들이 평소에 뭘 하고 살았는지, 어떤 모습이었는지조차 희미한 민중이란 이름으로 뭉뚱그려졌다. 저 꼭대기에서 위정자들이 이리저리 판을 벌이면 밑에서 무심히 따라가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이 책은 그런 민중의 삶, 내가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삶을 주목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역사서 인가? 역사서라고 하면 왠지 거창해 보인다. 지은이의 말마따나 이 책은 시시한 주제를 다루고 있고 흥미 위주의 잡문을 모아둔, 역사학의 영역에 간신히 한 발을 걸치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유난히 역사를 머리 아파하는 내게 이렇게 생생한 역사책은 없었다. 마치 아빠 어렸을 적에 지게지고 나무하러갔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만큼이나 놀랍고도 친근한 이야기다. 어제 내가 연극을 보러가고, 오늘 동생이 컴퓨터게임 방을 간 얘기. 시도 때도 없이 자주 바뀌는 대입제도에 수험생들의 머리가 지끈거리고 최첨단 기기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적발된 얘기가 시대만 바뀌어서 재연되고 있는것이다!
책은 크게 10개의 주제로 조선의 일상을 묘사한다. 시대의 명의에서부터 노름, 술집, 유흥 등 이것저것 잘 끄집어내기 좋아하는 드라마에서조차 제대로 보여지지 않았던 생소한 주제이자 가장 접근하기 쉬운 친근한 주제들이다. 그 중 가장 뇌리에 깊이 박힌 두 가지 주제는 바로 과거시험이다.
어린시절 즐겨 읽었던 위인전에서는 어렵지 않게
「몇 세에 과거에 급제하고…」「몇 번의 장원급제…」
라는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과거시험장이 완전 난장판도 그런 난장판이 없는 것이다. 내로라하는 집안 자제들이 공부도 안하고 다만 양반임을 과시하기 위해 과거를 보러 오고, 자리 맡는 몸 싸움꾼, 글 짓는 사람, 글씨 쓰는 사람이 소풍 온 듯 돗자리 깔고 파라솔 펴고, 그나마 답도 밖에서 공수해와서 제출하면 하루 만에 뚝딱 결과가 발표되는 것이다. 이거 원, 엄숙 할 거라고만 생각했던 과거시험장이 초 고난이도의 부정행위로 물든 가진 자들의 잔치였다니. 더욱이 ‘양반임을 과시하기 위해’ 라는 이유는 수험생 할인혜택을 노린 수험표족보다도 어이없었다. (수험표 족은 바닥을 깔아줘서 일반 수험생의 표준점수를 높여주기라도 한다!) 그리고 돈을 받고 액수에 따라 수준을 조절해주는 대리시험 전문가도 있었단다. 인터넷상에서 쉽게 숙제를 대신해주거나 하는 일들과 어쩜 이리도 닮았는지, 지금의 시험보다도 훨씬 타락하고 정신 없는 과거시험장의 실상은 어린 날의 상상을 깨버렸다. 몇 세에 과거에 급제한 위인들을 가만 살펴보면 돈 좀 있고 대대로 훌륭한 가문 아니었던가! 또 한 가지, 과거시험과목이 실무와 전혀 상관도 없는 내용이었다는 점에 이르러서는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런 거 배워서 어디다 써?”
라는 친구들의 푸념이, omr카드에 객관식 답을 체크 하는 모습이, 온갖 전공의 친구들이 하나같이 ‘고시’ 를 한번쯤 염두에 두고 있는 현실이 생각 나서이다. 과거시험이라면 일종의 논술 같아서 그 사람의 성품이나 생각을 보고 뽑는 것일 줄 알았는데 또 한번의 착각이었다.
감동과 어우동의 얘기는 또 어떤가? 예나 지금이나 성은 향락의 중심이었나 보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남자의 정조는 생뚱 맞은 소리였고 여성에게만 정절을 요구했나 보다. 유교윤리가 지배한 엄숙한 양반사회에 불륜은 또 왜 그리 많았는지…. 그밖에도 지금의 강남공화국을 떠올리게 하는 주거지, 도박으로 패가망신하는 사람, 놀고먹는 도련님들 등 지금 우리사회를 돌아보고 피식 웃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장장 400쪽에 걸쳐서 쓰여 있었다. 역사는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라는데,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가 사회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들리는 요즘세상이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와 닮아 있는 것이 씁쓸하다.
이 책에 대해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재밌으려고 애쓴 만큼 재밌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객관적인 자료 고증이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모두 하나의 소설이 될 듯한 짧은 사연들이 어지럽게 여러 개가 전개되기도 한다. 또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다 보니 어지럽게 많은 어휘들이 등장했기 때문 인 듯도 하다. 그러나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훌륭한’ 역사를 강조하는 국사책보다는 훨씬 넘기기가 수월했고 궁궐의 이야기가 아닌 일반 조선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다. 할머니의 할머니 이야기, 엄마 시골의 이웃집 사람들 같은 조선의 무명씨들이 이 책을 통해 당당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찜질방에서 계란을 까먹으며 “엄마 어렸을 적엔…” 이란 얘길 듣는 기분으로 며칠동안 나와 지하철길을 함께한 이 책을 덮었다.
여담으로, 먼 훗날 사람들은 ‘수, 우, 미, 양, 가’ 중 ‘가’ 가 즐비한 한 성적표를 발견하고 그 성적표 한 장을 토대로 이 시대의 평가방법을 추론할지도 모르다. 그리고
“아, 20세기 말 성적은 ‘가, 나, 다, 라-’ 세분화해서 평가했나 보다. 이 사람은 수재였나 보다.”
라며 이 시대의 무명씨를 평가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은 평균평점4.7 이라고 적힌 대학성적표를 발견하고 100점 중 4.7점이면 얼마나 공부를 못했을까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른다.
살아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 역사라기에 조선의 뒷골목 풍경도 많이 빠뜨리고 엉뚱한 색을 칠해 놨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술을 마시면서 “예전에도 이 자리에 술집이 있었을까?” 라는 의문을 품을 것이고, 대통령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 보다는 이 시대의 무명씨들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리라는 것은 의심치 않는다. 무명씨들의 이야기가 대통령의 이름과 업적을 짝짓는 것 보다 훨씬 더 이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그물이 될 것도 믿는다.
역사는 현재의 이야기이다. 우리의 오늘이 내일의 역사가 된다. 내가 세상에 존재함이 허무하지 않은 것도, 내가 이름을 불리는 왕들 사이에 있을지 무명씨 사이에 있을지는 모르지만, 오늘이라는 역사의 풍경을 완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뒷골목 풍경은 흥미롭다.
킬리만자로의 눈
드림 소사이어티(The Dream Socie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