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화와 칼
저자 : 루스베네딕트
출판사 : 책만드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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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루스베네딕트 저 마케팅 김효린
천황, 절대 우파들의 정치, 신사참배, 독도분쟁, 역사교과서 왜곡, 2002한 일 월드컵, 변태 , 오타쿠, 재팬 에니메이션, 등등... ... 일본 하면 나는 이런 수많은 사건과 단어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일본을 일체 치하의 통치속 우리들의 받아온 고통과 격동의 시간들 때문인지“가깝고도 먼나라” 라고 들 일컫는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일본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두 번 다시 과거의 과오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일본이란 국가에 관하여 정신적 지식 무기를 얻을 수 있는 좋은 참고문헌이 바로 일본에 관한 불멸의 베스트셀러인 루스베네딕트가 저술한 국화와 칼이 아닌가 싶다.
국화와 칼 이란 책은 학자 1946년에 루스 베네딕트에 의해 미국정부당국의 의뢰를 받아 일본이란 나라에 연구해 저술한 책이다. 히로시마와 오키나와 원폭으로 종결이 된 제2차 세계대전 일명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은 일본을 상대로 힘든 전쟁을 했다. 이에 미국인들은 생소한 일본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1944년 6월 미국은 인류학자 베네딕트에게 일본인들와 행동과 그들의 문화습성 등에 관한 모든 것을 연구하라는 의뢰를 했다고 한다. 그 연구내용이 바로 “국화와 칼”이다.
“국화와 칼”에서는 일본인 들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 그들의 정신 민족적 태도와 행동들에 대한 연구를 통한 자신의 해답과 그들의 정신 민족적 특징과 접목되어 나타나는 행동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첫 번째로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국가와 국가관의 관계, 인간과 국가 간의 관계에 대해 일본인이 품고 있는 관념의 근거가 된다는 일본인들의 자리매김인 계층구조에 관한 내용 이다, 두 번째는 절대 신성시 되는 어이없는 천황에 대한 내용이다. 또한 세 번째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일본인들의 이중적 성격과 관련된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효와 은혜의 의미였다.
역사적으로 이루어져 온 일본의 계층제도는 미국과 같은 자유 평등인 것과는 극단적으로 다르다. 그들은 불평등 계급구조의 역사를 살아오면서 자연스레 사람은 각각의 위치에 맞게 알맞은 자리매김을 한다는 것이 신념화 되어있다. 즉 일본인들의 평등은 "각자의 알맞은 위치"라 여겨서 그것을 한정이라는 선을 그어 각자의 위치 외에는 가질 수가 없게 하였다. 또한 이들은 각자의 위치와 위계를 존중하는 것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데 그것은 절대로 '강권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이런 한정 즉 위계서열은 가족 내의 연장자와 연소자 간, 남자와 여자 사이에 모두 적용되는데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연장자나 높은 지위의 사람에게 존경을 표시하여야 하고, 반대편은 그만큼의 권리와 책임을 가진다. 연장자의 특권은 그가 마치 폭군처럼 멋대로 군위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정신적 재산의 관리자와 유사한 행동을 하게 된다. 가정에서 아버지는 일가의 명예를 유지하는 강한 책임을 갖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일본에서의 천황은 바로 '알맞은 위치'의 최상부에 존재한다. 따라서 아래로는 천민에서 위로는 천황에 이르기까지 위계제도가 빈틈없이 짜여진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본인은 다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지도처럼 정밀하게 규정되고 모든 사회적 행동이 정해진 세계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정말 아무리 천황을 신성시 하는 그들의 역사적으로 내려온 태도를 이해하고 싶지만 그들이 아닌 이상 이해하기는 무척 어렵지만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천황은 생활 속에 녹아있는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내용 효와 은혜도 이 천황의 신성시되는 관념 속에서 이루어지는 개념이다. 최대의 은혜란 천황으로부터 입은 것이며, 그 아래에 아이들이 부모에게 지는 은혜가 있다. 모든 사람은 이것을 갚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은혜를 입는 것은 행복한 일이기도 하나 그것은 곧 부채이기 때문에 반드시 갚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보답은 천황에 대해서는 충으로, 부모에 대해서는 효로 표현된다. 이러한 의무는 강제력과는 거리가 멀며 제한된 관계에서만 적용된다. 일본 군인의 용감성은 바로 천황에 대한 충성심의 표현인 것이다. 그런데 은혜에 대한 의무는 의리와 같지는 않다. 의무는 가까운 육친의 세계에서 조국과 천황에 대해 지는 것이며, 태어나자마자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의리는 '본의 아니게 되는 것', 달리 말하면 계약관계의 이행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일본에서 '의리를 갚는다 '는 것은 온갖 종류의 사람들에 대한 온갖 종류의 의무를 다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에서 '의리를 지키지 않는 인간'이라는 지칭은 그 사람에 대한 가장 큰 모욕이다. 의리를 지키는 것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것'이다. 이름에 대한 의리는 자기 위치에 맞는 예절을 다하는 것에서 직업적 명성을 드높이는 것,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 복수를 행하는 것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다. 일본인들이 모욕당하는 것을 그토록 싫어하고 패배를 그토록 두려워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자신에 대한 공격(자살)과 타인에 대한 공격(전쟁의 도발)은 사실 의리를 자키기 위한 행위의 두 가지 표현일 따름이다. 패전 후 일본이 미국인의 예상과는 달리 점령군에 그토록 호의를 보인 것도 사실상 패전국으로서의 명예를 옹호하는 쪽으로 모든 주의를 전화시켰기 때문일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세계적으로 각 나라와의 관계가 국가의 발전을 결정하는 열쇠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앞으로 그들을 올바로 이해해가며 일본과의 관계를 돈독히 공존해 나아가 나아가서는 동아시아가 세계물류 경제의 중심이 되는 중추적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