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데우스: 불공평한 세상에서 살아가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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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우스: 불공평한 세상에서 살아가는법
민병우
밀로스 포먼 감독의 [아마데우스]를 보면 궁정악장인 살리에르는 모차르트의 천재적인 음악성에 대해 시기를 느낍니다. 살리에르의 아버지는 음악이라고는 전혀 모르고 자식에게 전혀 관심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살리에르는 어린시절부터 매일 교회에서 기도를 합니다. 자신의 음악으로 신을 거룩하게 찬미해 달라고. 그의 소원대로 그의 앞길을 방해하기만 했던 아버지가 죽고 그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 궁정악장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모차르트라는 천재적인 음악가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미하지도 않으며, 방정맞고 버릇없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런 모차르트는 부모도 잘 만났습니다. 모차르트는 음악에 조예가 깊은 아버지를 만나 어릴 때부터 좋은 음악을 교육받았습니다.
살리에르는 황당하다 못해 절망스럽기까지 합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신심이 깊은 자신에게 신은 천재적인 음악성을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자들 뒤꽁무니나 좇아 다니고, 천한 행동이나 일삼는 버릇없는 모차르트에게 그런 능력을 주었는가 말입니다. 그는 신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한탄을 합니다.
우리는 세상은 공평하다는 얘기를 듣고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세상이 공평해야 하는데, 왜 나는 가난한가 말입니다. 왜 나는 친구들처럼 좋은 옷을 입지 못하고 비싼 장난감을 갖지도 못하며, 좋은 집에서 살지도 못하는가 말입니다. 학교에서, 또 책에서 배웠던 것은 모두 거짓말뿐입니다. 세상은 이리도 불공평한데 말입니다.
나이가 들어 주변을 둘러보면 기막힌 일은 더 많이 겪게 됩니다. 학비를 대느라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해도 제대로 등록금 낼 돈을 모을 수도 없는데, 자가용을 몰고 학교에 오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밤을 새워 공부를 해도 도대체 성적이 올라갈 생각은 않는데, 놀 것 다 놀면서도 조금만 공부해도 항상 성적이 상위권인 친구도 있습니다. 신혼살림을 값싼 전세방에서 시작하기도 빠듯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친구는 처음부터 부모가 사준 커다란 아파트에서 신접살림을 시작 합니다. 그런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10년 동안 먹지도 입지도 않고 돈을 모아도 힘든데 말입니다.
위의 사례들에서 보았지만, 자신의 처지가 남보다 못한 것에 대해 억울하다 못해 한이 맺힐 수 있습니다. 나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왔건만,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더 큰 재능이 부여되는 수도 많습니다. 나는 쉬지 않고 일해도 작은 돈을 손아귀에 쥘 뿐인데, 부모를 잘 만나 손쉽게 유산을 물려받아 부유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린시절 선생님의 얘기나 동화책에서는 세상은 공평하다고 해놓고선 왜 현실은 다른가 말입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또 가슴으로 이런 말을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은 세상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인 것입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인생을 받아들이는 첫 단추는 이미 채운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왜 우리는 자신의 처지가 남보다 못한 것에 대해, 자신의 외모나 재능이 남보다 떨어지는 것에 대해, 집안 환경이 남들 보다 가난한 것에 대해 억울한 생각이 들까요?
그건 무조건 세상은 공평해야 한다고 우기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은 자신이 가진 재능이나, 능력, 재산, 환경 등이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생의 불공평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남은 길은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재능, 나를 낳아준 부모를 원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왜 하필 나는 그런 부모를 만나서 이렇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을까? 왜 나는 좋은 재능을 부모에게 물려받지 못했을까? 또한 자신이 가져야 할 돈이나 지위, 직업을 남들이 다 뺏어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회를 탓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불평등한 사회구조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게 만들어져 있을 뿐이야” “ 내 재능을 알아보는 이는 아무도 없어, 단지 운이 좋은 인간들이나 부모의 배경을 잘 타고난 자들만이 좋은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을 뿐이야”
그리고 이런 불평등한 세상에 대해, 또 인생에 대해 한탄을 하고 원망만 하며 지낼 뿐입니다. 사실 이런 생각이 잠깐씩 들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굳어진다면 인생은 점점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주변에는 나를 이렇게 만든 가해자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내 환경, 내 부모, 내가 속한 사회 모두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망가뜨리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한 것은 이런 정해진 운명으로 인해 나는 영원히 인생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나는 운명의 희생자일 뿐입니다. 나의 의지로 내 인생에 관여한 부분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인데, 도대체 내가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만 하게 되고,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속이 쓰리고 상하지만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면 인생에 대한 태도는 달라집니다.
“자 어쩌겠는가? 내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내가 재능이 다른 사람보다 부족한 것을 말이다” 이런 받아들임은 절대 패배주의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항상 내가 운명의 희생자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계속 내가 처한 운명에 대해 원망만 하고 지내는 사람은 영원히 자신의 운명은 주변 환경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해도 소용없다는 패배주의적인 생각입니다. 하지만 불공평한 세상을 받아들이게 되면, 이제부터 내가 인생에 대한 세상에 대한 주도권을 쥐게 됩니다. “주어진 환경이나 재능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물론 남들보다 불리한 부분도 있지만 말이다.” 이런 생각을 품는다면 다음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처한 환경이 불리하지만, 내가 재능이 떨어지지만, 내가 유복한 집안에 태어나지 못했지만, 내가 내 손으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인가?”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이 인생이나 세상의 희생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남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면서 지내는 것을 멈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제 능동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은, 불행이 또 안 좋은 환경이, 또 역경이 많은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어 주었고, 그것이 축복이 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편하게 인생을 시작하고 인생을 순조롭게 살아가려 합니다. 하지만 순조로운 인생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인생에서 부딪쳐야할 어려움이나 커다란 문제에 봉착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도리어 우리가 축복이라고 생각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이런 역경이나 시련 앞에서 힘없이 무너지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인생의 어려움에 대한 저항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환경에 어렸을때 노출되었던 사람은 이미 그런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저절로 터득한 강인한 정신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인생을 버텨줄 예방백신을 어릴 때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백신을 맞을 때는 통증도 있고, 몇일 팔이 얼얼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병에 대한 저항력은 생기지 않습니까.
또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환경에서 살게 되면,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성인기를 맞게 되면 인생의 혹독한 시련앞에서 굴복하거나 쓰러지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소위 우리가 말하는 축복받은 환경이나 재능이 어떤 사람에게는 재앙을 가져다 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인생은 다시 공평해졌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그 사람이 얻는 것이 있는 반면 좋으면 좋은대로 또 잃는 것도 있습니다. 참 인생은 얼마나 공평합니까?
살리에르가 만약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것을 받아들였다면 그의 인생은 달라졌을 겁니다. 그는 말년에 절대 불행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무지한 아버지로 인해 음악교육도 받지 못했고, 자신의 힘으로 궁정악장에 올랐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넓은 마음으로 모차르트의 재능을 인정해주고 그의 음악에 경의를 표했을 겁니다.
“세상은 불공평 한 법이니까. 모차르트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고,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누가 더 낫지도 누가 그렇다고 못나지도 않은 것일뿐. 나름대로 내 음악적인 재능이 떨어질지라도 나는 진심으로 신께 내 음악을 바치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 말이다“
실제로 모차르트는 어린시절부터 음악의 천재로 인정받았고, 아버지의 그늘아래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온실속의 화초처럼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른이 되서도 자신의 앞가림을 하지 못했습니다. 경제적으로 항상 파산상태에 이르렀고, 자신의 가정을 돌보지 못할 정도로 무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천재성과 궁핍하고 불행한 결혼생활을 맞바꾸었던 것입니다.
민병우
밀로스 포먼 감독의 [아마데우스]를 보면 궁정악장인 살리에르는 모차르트의 천재적인 음악성에 대해 시기를 느낍니다. 살리에르의 아버지는 음악이라고는 전혀 모르고 자식에게 전혀 관심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살리에르는 어린시절부터 매일 교회에서 기도를 합니다. 자신의 음악으로 신을 거룩하게 찬미해 달라고. 그의 소원대로 그의 앞길을 방해하기만 했던 아버지가 죽고 그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 궁정악장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모차르트라는 천재적인 음악가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미하지도 않으며, 방정맞고 버릇없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런 모차르트는 부모도 잘 만났습니다. 모차르트는 음악에 조예가 깊은 아버지를 만나 어릴 때부터 좋은 음악을 교육받았습니다.
살리에르는 황당하다 못해 절망스럽기까지 합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신심이 깊은 자신에게 신은 천재적인 음악성을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자들 뒤꽁무니나 좇아 다니고, 천한 행동이나 일삼는 버릇없는 모차르트에게 그런 능력을 주었는가 말입니다. 그는 신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한탄을 합니다.
우리는 세상은 공평하다는 얘기를 듣고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세상이 공평해야 하는데, 왜 나는 가난한가 말입니다. 왜 나는 친구들처럼 좋은 옷을 입지 못하고 비싼 장난감을 갖지도 못하며, 좋은 집에서 살지도 못하는가 말입니다. 학교에서, 또 책에서 배웠던 것은 모두 거짓말뿐입니다. 세상은 이리도 불공평한데 말입니다.
나이가 들어 주변을 둘러보면 기막힌 일은 더 많이 겪게 됩니다. 학비를 대느라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해도 제대로 등록금 낼 돈을 모을 수도 없는데, 자가용을 몰고 학교에 오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밤을 새워 공부를 해도 도대체 성적이 올라갈 생각은 않는데, 놀 것 다 놀면서도 조금만 공부해도 항상 성적이 상위권인 친구도 있습니다. 신혼살림을 값싼 전세방에서 시작하기도 빠듯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친구는 처음부터 부모가 사준 커다란 아파트에서 신접살림을 시작 합니다. 그런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10년 동안 먹지도 입지도 않고 돈을 모아도 힘든데 말입니다.
위의 사례들에서 보았지만, 자신의 처지가 남보다 못한 것에 대해 억울하다 못해 한이 맺힐 수 있습니다. 나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왔건만,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더 큰 재능이 부여되는 수도 많습니다. 나는 쉬지 않고 일해도 작은 돈을 손아귀에 쥘 뿐인데, 부모를 잘 만나 손쉽게 유산을 물려받아 부유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린시절 선생님의 얘기나 동화책에서는 세상은 공평하다고 해놓고선 왜 현실은 다른가 말입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또 가슴으로 이런 말을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은 세상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인 것입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인생을 받아들이는 첫 단추는 이미 채운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왜 우리는 자신의 처지가 남보다 못한 것에 대해, 자신의 외모나 재능이 남보다 떨어지는 것에 대해, 집안 환경이 남들 보다 가난한 것에 대해 억울한 생각이 들까요?
그건 무조건 세상은 공평해야 한다고 우기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은 자신이 가진 재능이나, 능력, 재산, 환경 등이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생의 불공평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남은 길은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재능, 나를 낳아준 부모를 원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왜 하필 나는 그런 부모를 만나서 이렇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을까? 왜 나는 좋은 재능을 부모에게 물려받지 못했을까? 또한 자신이 가져야 할 돈이나 지위, 직업을 남들이 다 뺏어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회를 탓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불평등한 사회구조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게 만들어져 있을 뿐이야” “ 내 재능을 알아보는 이는 아무도 없어, 단지 운이 좋은 인간들이나 부모의 배경을 잘 타고난 자들만이 좋은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을 뿐이야”
그리고 이런 불평등한 세상에 대해, 또 인생에 대해 한탄을 하고 원망만 하며 지낼 뿐입니다. 사실 이런 생각이 잠깐씩 들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굳어진다면 인생은 점점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주변에는 나를 이렇게 만든 가해자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내 환경, 내 부모, 내가 속한 사회 모두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망가뜨리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한 것은 이런 정해진 운명으로 인해 나는 영원히 인생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나는 운명의 희생자일 뿐입니다. 나의 의지로 내 인생에 관여한 부분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인데, 도대체 내가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만 하게 되고,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속이 쓰리고 상하지만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면 인생에 대한 태도는 달라집니다.
“자 어쩌겠는가? 내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내가 재능이 다른 사람보다 부족한 것을 말이다” 이런 받아들임은 절대 패배주의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항상 내가 운명의 희생자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계속 내가 처한 운명에 대해 원망만 하고 지내는 사람은 영원히 자신의 운명은 주변 환경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해도 소용없다는 패배주의적인 생각입니다. 하지만 불공평한 세상을 받아들이게 되면, 이제부터 내가 인생에 대한 세상에 대한 주도권을 쥐게 됩니다. “주어진 환경이나 재능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물론 남들보다 불리한 부분도 있지만 말이다.” 이런 생각을 품는다면 다음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처한 환경이 불리하지만, 내가 재능이 떨어지지만, 내가 유복한 집안에 태어나지 못했지만, 내가 내 손으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인가?”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이 인생이나 세상의 희생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남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면서 지내는 것을 멈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제 능동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은, 불행이 또 안 좋은 환경이, 또 역경이 많은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어 주었고, 그것이 축복이 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편하게 인생을 시작하고 인생을 순조롭게 살아가려 합니다. 하지만 순조로운 인생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인생에서 부딪쳐야할 어려움이나 커다란 문제에 봉착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도리어 우리가 축복이라고 생각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이런 역경이나 시련 앞에서 힘없이 무너지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인생의 어려움에 대한 저항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환경에 어렸을때 노출되었던 사람은 이미 그런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저절로 터득한 강인한 정신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인생을 버텨줄 예방백신을 어릴 때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백신을 맞을 때는 통증도 있고, 몇일 팔이 얼얼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병에 대한 저항력은 생기지 않습니까.
또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환경에서 살게 되면,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성인기를 맞게 되면 인생의 혹독한 시련앞에서 굴복하거나 쓰러지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소위 우리가 말하는 축복받은 환경이나 재능이 어떤 사람에게는 재앙을 가져다 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인생은 다시 공평해졌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그 사람이 얻는 것이 있는 반면 좋으면 좋은대로 또 잃는 것도 있습니다. 참 인생은 얼마나 공평합니까?
살리에르가 만약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것을 받아들였다면 그의 인생은 달라졌을 겁니다. 그는 말년에 절대 불행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무지한 아버지로 인해 음악교육도 받지 못했고, 자신의 힘으로 궁정악장에 올랐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넓은 마음으로 모차르트의 재능을 인정해주고 그의 음악에 경의를 표했을 겁니다.
“세상은 불공평 한 법이니까. 모차르트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고,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누가 더 낫지도 누가 그렇다고 못나지도 않은 것일뿐. 나름대로 내 음악적인 재능이 떨어질지라도 나는 진심으로 신께 내 음악을 바치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 말이다“
실제로 모차르트는 어린시절부터 음악의 천재로 인정받았고, 아버지의 그늘아래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온실속의 화초처럼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른이 되서도 자신의 앞가림을 하지 못했습니다. 경제적으로 항상 파산상태에 이르렀고, 자신의 가정을 돌보지 못할 정도로 무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천재성과 궁핍하고 불행한 결혼생활을 맞바꾸었던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