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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교양] 서구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 김효린
2008/12/04 133953

서구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
저자 : 존 M. 홉슨
출판사 : 에코리브르
동양과 서양의 문명적 특질을 축약하는 말로 흔히 동도서기(東道西器)란 말을 쓴다. 그러나 이 책을 보고나면 저 말은 동도동기(東道東器)로 바꾸어야만 할 것 같다. 정신문명은 물론이고 기계문명마저도 그 발원지는 동양이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동양이 서양과의 문명발달 경쟁에서 근소한 시간적 우위를 점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역사의 전 과정을 통틀어 ‘숙련된’ 동양에서 ‘미숙한’ 서양으로 ‘모든’ 인문적 지식이 ‘전수’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아울러 이 전수목록에는 원천기술뿐만 아니라 거의 완제품 수준까지 아우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나도 왕년에..”로 시작되는 중늙은이의 자기연민 짙은 넋두리로 볼 수만은 없는 것이 저자가 참조하고 인용하는 사료와 자료들은 충분히 치밀하고 방대하다. (따라서 구태여 저자가 존 M. 홉슨이라는 전형적인 서양인 혈통이란 걸 내세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그러한 부질없는 원조논쟁에 있지 않고 인류문명에 있어서 동양의 명백하고 압도적이었던 문명사적 역할이 얼마나 축소되고 은폐되어 왔는지를 밝히려는데 있다. 그 과정에서 서양의 이러한 자기기만적인 배사율(배은망덕)을 범하기 시작한 것이 극히 최근부터임도 알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고정관념의 먼지를 털어내어야 한다. 그것은 동양과 서양은 훨씬 오래전부터 아니 역사의 전 과정에서 ‘무차별적인’ 교류를 지속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에도 극동의 한반도에서 탄생된 지적산물이 유럽의 중심부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5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오늘날의 지구촌 실시간 교류문명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선조들의 세계는 우리가 인식해왔던 이상으로 코스모폴리즘적이었다.

하지만 잊지말아야 할 것은 그 교류는 일방통행적인 교류였다는 것이다. 즉 서양은 늘 문명의 수혜자였다. 동양은 ‘창조’하고 서양은 ‘모방’했다. 사실상 근대까지도 유럽인들의 기술수준은 모든 분야에서 동양에 비해 아주 조악했다. 어떤 유럽 지식인은 그의 저서 《위대한 우(禹) 임금과 공자(Yu le Grand et Confucius)》에서 유럽인이 괄목할 만한 경제적 발전을 누리고 싶다면 중국을 모방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할 정도였다. (255쪽. 그는 애덤 스미스와 동시대 인물이다) 또한 16세기 예수회 선교사의 보고서를 접했던 서양인은 일반적으로 중국(이집트와 더불어)을 “더 발전하고 세련된 문명을 제공하며, 두 나라 모두 상당한 물질적 성과, 심오한 철학, 월등한 저술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겼다.”

그랬던 유럽인들도 17세기에 이르러 마치 ‘유전자 대혁명’을 겪은 것처럼 일대 변신을 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뉴턴 등을 비롯한 대과학자들의 세기가 열린 것이다. 이와 동시에 동양은 더 이상의 ‘창조적 지식’의 출현이 없는 까닭모를 정체시기에 빠져들게 된다. 이마두, 즉 마테오리치 신부(1552~1610)와 진묵대사(1562~1633)는 동시대의 인물들이며, 역시 그들의 임종 직후부터 유럽에서는 ‘창조적 지식혁명’의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문제는 서양인들이 주도권을 쥐자마자 그것을 남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비약적인 발흥은 단순히 동양에 대한 지적인 부채에만 기인했던 것이 아니다. 서양은 동양과 소위 제3세계(이 말은 원래 3등급이란 의미에서 비롯되었다. 당연히 2등급은 동양)의 식민지화를 통해서 무상의 노동력과 자원, 무엇보다도 독점에 가까운 시장확보라는 이중 삼중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영국의 산업혁명도 당연히 그에 기반한다. 저자는 나아가 영국의 산업혁명에는 동양으로부터 이러한 경제적인 이득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모방까지 동원이 되었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증기기관도 그 단적인 예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책이 서양에 의해 은페된 동양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진정한 인류사를 복원하기 위한 나머지 숙제는 우리 동양의 몫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단한 삶을 자유롭게 하는
아리랑, 민족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