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정함: 프시케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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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함: 프시케의 선택 민병우
그리스 신화에서 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는 애절하고 애틋한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에로스와 프시케가 처음 만났을 때 사랑의 신인 에로스는 자신의 모습을 절대로 보지 말라고 프시케에게 당부합니다. 하지만 언니들의 꾐에 빠진 프시케는 그만 에로스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자고 있던 에로스를 보기 위해 촛불을 켜고 다가갔다가 그만 에로스에게 들키고 맙니다. 프시케는 그동안 남편이 흉측한 괴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을 했지만, 너무나 잘생긴 미소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에로스는 자신과 약속을 지키지 않은 프시케의 곁을 떠나고 맙니다. 이후 프시케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 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실성한 사람처럼 에로스를 찾아 헤맵니다. 그래서 당도한 곳이 에로스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신전입니다. 에로스의 어머니가 누구입니까? 미의 여신이며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비너스)입니다.
가뜩이나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이 기껏 인간과 사랑에 빠진것에 못마땅해 하던 아프로디테는 아들인 에로스를 만나게 하는 조건으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과제를 내줍니다. 그중 가장 위험한 것이 죽은 영혼들이 거처하는 지하세계로 내려가 지하세계의 여왕, 한마디로 염라대왕의 부인인 페르세포네의 화장품을 얻어오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냥 죽으라는 얘기죠. 하지만 프시케는 에로스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지하세계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화장품을 구해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그녀는 가장 힘든 난관에 부딪칩니다. 지하세계를 빠져나오는 도중에 저승에서 떠돌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이 프시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겁니다. 그녀는 고민에 빠집니다. 그 불쌍한 영혼들을 도와주고 싶은 것입니다. 한참을 고민했지만 그녀는 결단을 내립니다. 냉정하게 그 불쌍한 영혼들의 청을 모두 거절하고 저승을 빠져나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게 됩니다.
프시케가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마무리짓기 위해서 가장 필요했던 것은 “냉정함”입니다.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을 과감하게 “No"라고 얘기할 수 있는 단호함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특히 우리사회처럼 정으로 얽혀진 사회에서 냉정함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실 프시케와 같은 젊은 여성들이 이런 냉정함과 동정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은 드물지 않게 맞닥뜨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떤 젊은 여성은 가난한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남자친구가 공부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둘은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가게를 같은 운영하게 되었고, 가게는 점점 더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곧 게을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가게에 나오지 않는 일도 많게 되었고, 술을 마시고 아예 몇 일씩 잠적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알지 못하는 여자에게 전화나 문자가 오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불우한 과거를 지녔던 남자친구가 자신이 없으면 제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그와 헤어지지도 못합니다. 자신마저 남자친구를 버린다면 그는 폐인이 될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그냥 그 남자친구의 곁에 머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술독에 빠진 사람처럼 거의 매일 술을 먹어댔고, 성격은 피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럴수록 그녀는 남자친구의 곁을 더욱 떠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를 받아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젊은 여성들에게 냉정함은 비인간적이란 소리를 듣기 십상입니다. “너는 참 독하다, 어떻게 내가 부탁한 걸 거절 할 수 있니?”“ 내가 그렇게 당신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내 사랑을 받아줄 수 없는 거니, 넌 참 피도 눈물도 없구나”“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이번 한번만 용서해 준다면 당신을 위해 무엇이든 할게, 당신이 무릎을 꿇으라면 꿇을게, 어제 당신을 때린 건 내가 죽을죄를 지었어 한번만 용서해줘, 하지만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 알잖아, 그런데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등을 돌릴 수 있는 거니?”
대개 이런 정도의 호소를 상대방이 하게 된다면 젊은 여성들은 자신이 너무 냉정한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분명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또 그 사람이 똑같은 실수를 저지를 것이란 걸 알면서도, 또 자신이 계속 마음고생을 할것이란걸 알면서도 자신의 뜻을 굽힙니다.
이런 막연한 기대 때문입니다. “세월이 지나가면 나아지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그 사람을 바꿔 놓을 수 있을거야?,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데, 저 사람도 달라지지 않을까?” 이런 기대는 대개 세월이 지나갈수록 바뀌지 않는 상대방 때문에 퇴색되지만,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그 사람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냥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의 직관처럼 정확한 것은 없습니다. 직관은 자신과 상대방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이 사람과 결혼하면 불행해 진다는 것, 이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 이란 것, 당장은 자신에게 무릎을 꿇지만 그냥 순간에 그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란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애써 그 직관을 무시하려 듭니다. 그리고 감정에 매달립니다. 그리고 동정심에 끌립니다. “내가 아니면 저 사람을 누가 보살펴 줄 수 있을까?” 성녀 마리아 콤플렉스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감싸 안고 사랑하고 보듬어주고 싶은 여성의 욕구가 드러나는 것이죠. 그리고 그래야만 자신이 도덕적으로 떳떳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누구의 조언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분명 잘못된 판단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자신의 고집을 부립니다. 그리고 둘은 이제 점점 나락의 길로 빠져듭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엔 후회를 하게 됩니다. “왜 그때 내가 그 남자를 거절하지 못했을까?” “왜 이 세상에 나 혼자만 그 남자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도리어 내가 모든 것을 다해 줬기 때문에 남자는 독립할 기회르 가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전히 나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몇 년전 분명 그녀의 직관은 해답을 알고 있었고, 그녀에게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조언을 무시한 대가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상대방 남자를 부양해야하고, 응석을 받아주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온갖 남자의 열등감을 다 받아줘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겁니다.
프시케와 에로스의 신화는 사랑의 본질과 소녀가 여자로 성숙하기 위해 필요한 덕목을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에로스가 프시케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지 말 것을 처음 약속받습니다. 하지만 프시케는 그 약속을 어기고 맙니다. 사랑은 일단 신뢰관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걸 암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프시케가 지하세계로 들어가 불쌍한 영혼들의 청을 거절한 것은 젊은 여성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거절할 수 있는 냉정함이 꼭 필요하다는걸 알려줍니다. 만약 프시케가 그 불쌍한 영혼들의 청을 다 들어주었다면, 그녀는 자신의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고, 영원히 저승에 머물러야 됐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과제나 임무는 잊은 채 불쌍한 영혼(남자)에 둘러싸여 그 뒤치다꺼리를 해주느라 지옥같은 생활에 머물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냉정함이란 덕목에는 남녀간에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에게 냉정함이란 긍정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단호함, 추진력, 사업능력, 철저한 인력관리능력”으로 비춰집니다. 반면 여자에게 냉정함이란 “피도 눈물도 없는, 여성스럽지 않은, 이기적인, 돈만 아는, 출세에 눈이먼, 지나치게 현실적인”등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정함은 젊은 여성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No"라고 얘기하지 못해 자신의 인생을 후회와 회한의 날들로 채우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그래서 가장 용기있는 여성은 결혼 전날 파혼을 선언한 신부입니다“ 이미 청첩장은 돌려지진지 오래고, 직장 동료나 친척은 내일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평생을 남들에게 체면을 지키거나, 창피당하지 않기 위해 저당잡히지 않으려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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